5월은 생명의 달이다. 땅의 넉넉한 마음 때문인지 이곳 저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난다. 아카시아 꽃 향내도 물씬 풍긴다. 초록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 상황에서 한 생명이 삶을 마감했다. 봄 내음 물씬 풍기는 5월 중순 주말, 모내기를 하기 위해 시골 집에 오는 길에 비보를 접했다. 머리가 띵했다. 만우절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말이란 말야.
버스를 타고 내려오던 2시간 동안 버스 안 TV는 노무현 전 대통령 소식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96년과 97년 생각이 났다. 서울 종로 3가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던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에서 난 난생처름 노무현 전 의원을 만났다. 노 전 의원실 전산실장을 하던 학교 선배의 일을 잠깐 도와주러 갔던 때, TV에서 보던 노 변호사를 처음 만났다. 돌쇠처럼 생겼던 노 변호사에게 사람들은 ‘의원님’이라고 불렀다. 국회의원에 떨어져 현직 의원도 아닌 양반에게 다들 의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후 97년, 서울 종로구 도렴빌딩에 새롭게 둥지를 튼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는 여전히 변호사였지만 의원님으로 불렸다. 가벼운 인사를 다시 나눴다. 대학 4학년 때 여름방학과 주말 틈틈히 사무실에 가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했다. IT 분야에 있었던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력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이름이 ‘뉴리더 2000′이었다.
정치하면서 만났던 모든 이들에 대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난 당시 버그잡이였다.
의원이 프로그램 개발 의뢰를 하다니 참 재미난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제품은 세상 빛을 보지 못했다. 버그가 많았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작게 1.0 버전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관련 기능들을 업그레이드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당시엔 노 전 의원이 원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담으려고 하다보니 개발 기간을 계속 늘어나고, 버그는 그 만큼 많아졌다.
그렇게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여느 날처럼 방문한 사무실은 분위기가 살벌했다. 모든 참모들이 회의실에 들어가 책상에 모두 앉아 있었고, 노 전 의원은 심각했다. 난 밖에 혼자 앉아 열심히 버그를 잡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정당에 막차를 타고 입당하는 문제로 난상토론이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고 나니 사무실은 상당히 분주했다. 종로 의원으로 공천받아 선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지만 참모들은 가끔 한숨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의원님에게 아침 일찍 삼청공원에 가서 인사 좀 하자고 하는데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종로에서 살았지만 한번도 아침에 삼청공원에 가서 운동을 안했는데, 선거 시작됐다고 해서 안하던 짓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셨다고 했단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지 도통 타협을 안해 주신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후 노무현 전 의원은 진짜 의원이 됐고, 약간 있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났다.
2년의 시간이 지났고, 99년 겨울 난 IT 잡지 기자가 됐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 그는 우리나라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세계 첫 인터넷대통령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그 후 재미난 소식이 들려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뢰한 정보 시스템 ‘이지원’이 개발중이라는 것이었다. 업무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한 도전이 시작됐고, 아이디어는 노무현 대통령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다행인지 그 프로젝트는 국내 최대 IT 서비스 회사가 담당했다. 섣부른 아마추어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청와대 파견된 개발자들의 방에 대통령이 연락없이 들어와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는 유독 IT 행사에 많이 참석했고, IT인들은 그런 대통령을 좋아했다. 대통령 기록물을 모두 저장해 관리할 수 있도록 법도 바꿨고, 청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의사결정들은 대부분 역사로 저장되고 있다고도 했다. 새로운 정보시스템을 먼저 제안하고 적극 활용하는 수장이 들어서자 많은 공무원들도 이를 따랐다. 공공 기관들이 성과관리 프로젝트를 앞다퉈 진행한 것도 이 때였다. 물론 그 효과에 대한 결과는 차치하고라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주는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IT인들은 환영했다.
시간은 흘렀고, 그는 퇴임을 했고,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객지 생활 20년을 넘긴 기자 입장에서도 그 모습은 언젠가 닮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세상과의 소통의 끈을 이어갔다. 하지만 얼마 후 대통령 기록물을 유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골에서 대통령 기록물을 보기 위해 매번 경기도 성남의 대통령기록물보관소로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원본을 복사해 가져간 것이다. 현 정부는 전용선 하나 깔아주고 암호화해주면 될 일을 거부하고, 이지원 시스템의 데이터를 가져갔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을 고발했다. IT 강국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소가 웃을 일이었다.
시간은 또 흘러 그는 검찰에 출두했고, 최대 무기였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5월 23일 아침, 목숨을 던졌다.
한 때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지나간 후 시골 집에서 난 모를 심기 위해 모판을 날랐다. 흐렸던 아침 날씨는 모 심기 아주 좋은 날씨로 바뀌어 있었고, 새로운 생명은 그 뿌리를 땅에 깊숙히 박았다. 새로운 삶을 잉태하기 위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가을이 오면 수많은 씨앗들이 그 껍질을 깨고 내 밥상에, 그리고 우리들의 밥상에 오를 것이다. 매년 있어왔던 모내기의 날이었지만 오늘의 모내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남은 사람은 삶을 살아가야하고, 생명을 심어야한다.
바보 노무현이 남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란 그 말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온 날이었다.
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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